보드카에 쓰러졌던 서른 살 청년, 일론머스크 우주 제국을 세우다

2002년 초, 러시아 모스크바의 한 어두컴컴한 식당 뒷방. 매서운 추위가 감도는 방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한눈에 봐도 독해 보이는 보드카 잔들이 줄지어 놓였고, 그 주변으로 기름진 러시아식 안주가 몇 가지 차려졌다. 이 자리의 주인공은 서른 살의 젊은 자산가, 일론 머스크였다.
그는 당시 인터넷 결제 기업인 페이팔을 매각하고 막대한 부를 쥔 참이었다. 남들은 그 돈으로 실리콘밸리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거라 예상했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엉뚱한 생각뿐이었다. 화성에 온실을 보내 인류의 우주 개척 열망을 깨우겠다는 이른바 '화성 오아시스' 계획. 그 황당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조한 로켓을 사려고 러시아의 무기 거상들과 마주 앉았던 것이다.
하지만 머스크의 상태는 영 말이 아니었다. 모스크바로 오기 전, 프랑스 파리에서 밤새도록 축제를 즐기며 술을 마신 탓에 지독한 숙취에 시달리고 있었다.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눈꺼풀은 무거웠다. 그런 그에게 러시아인들은 연신 독한 보드카를 부어대며 기선제압을 시도했다. 머스크의 얼굴에 부착된 사진과 함께 '화성에 간 일론'이라는 문구가 정성스럽게 인쇄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형 보드카 병까지 선물하면서 말이다.
머스크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상 위에 놓인 음식의 무게와 보드카의 무게가 거의 비슷했을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억지로 잔을 비워내며 한 손으로 간신히 머리를 받치고 버티던 머스크는, 결국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의 고개가 툭 떨어지며 식탁에 쿵 하고 부딪히는 순간, 식당 안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사내가 러시아 변두리 식당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꼴이었다.
정신을 차린 뒤 이어진 협상도 모욕의 연속이었다. 머스크는 로켓 두 기를 1,800만 달러에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러시아인들의 계산은 달랐다. "한 기당 1,800만 달러"라는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머스크가 말도 안 된다며 버티자, 그들은 비웃듯이 가격을 한 기당 2,100만 달러로 올려 불렀다. 그러고는 풋내기 취급을 하며 뼈아픈 한마디를 던졌다.
"왜 그러나, 꼬마야? 돈이 없는 건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은 머스크는 빈손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귀국하는 길, 분노와 허탈함이 뒤섞인 비행기 안에서 그는 결심했다. 러시아든 그 누구든, 남의 로켓을 구걸하느라 고개를 숙이지 않겠다고. 내가 직접 로켓을 만들면 된다고 말이다. 비행기 안에서 그는 이미 독학으로 섭렵한 우주공학 교과서들의 수식을 짜 맞추며 로켓 제조 단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그렇게 모스크바에서의 굴욕과 실패는 오늘날 기업 가치만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탄생하는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근교의 오래된 창고에 둥지를 튼 스페이스X의 초기 모습은 무모함 그 자체였다. 머스크는 은색 스포츠카를 몰고 창고 안 사무실까지 돌진하곤 했고, 배달 트럭이 오면 직접 셔터를 올리고 접이식 탁자와 컴퓨터를 나르는 기행을 보였다. 그는 기존 항공우주 업계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고 싶어 했다. 부품을 수천 개의 협력사에서 받아 조립하는 대신, 엔진부터 비행 컴퓨터, 태양광 패널까지 거의 모든 것을 한 지붕 아래서 직접 만들기로 한 것이다. 심지어 청소용 밸브의 밀폐 부품을 조금 손봐 로켓 연료 밸브로 써먹는 지독한 원가 절감 기술까지 동원되었다.
주변에서는 모두 미친 짓이라 손가락질했다. 대기업들이 수년에 걸쳐 수천억 원을 써야 만드는 부품을 단 몇 달 만에, 그것도 몇억 원 수준으로 만들어내라는 머스크의 불도저 같은 압박에 직원들은 밤낮없이 기계처럼 일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리콘밸리와 기존 대기업의 인재들이 이 무모한 도전에 매료되어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짜 지옥은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외딴섬, 콰잘레인에서 펼쳐졌다. 미국 본토의 발사장을 쓰지 못하게 막아서자 머스크와 직원들은 찌는 듯한 무더위와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이 부는 이 작은 섬으로 장비를 바리바리 싸 들고 들어갔다. 습도 높은 섬에서 콘테이너를 개조해 사무실을 만들고, 아침 7시부터 밤 7시까지 진흙탕을 구르며 로켓을 정비했다. 마치 로켓을 만드는 고립된 외딴섬의 조난자들 같았다.
그리고 2006년 3월 24일, 마침내 스페이스X의 첫 번째 로켓 '팰컨 1'이 불을 뿜으며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섬의 통제실에서 반바지에 샌들을 신은 채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머스크의 눈에 희망이 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던 로켓은 발사 25초 만에 엔진 상부에서 화재가 발생하며 그대로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차가운 땅으로 고꾸라져 폭발해 버렸다.
수년간의 노력과 수백억 원의 돈이 한순간에 거대한 불꽃과 잔해로 변해버린 비극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위대한 서사의 시작이었다. 실패의 잿더미 속에서도 머스크는 멈추지 않았다. 로켓이 폭발하고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절망 속에서도 그는 이미 다음 발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동시에 전기차 기업인 테슬라의 경영까지 도맡으며 자신의 모든 재산과 영혼을 베팅하고 있었다. 모스크바 식당 바닥에서 고개를 떨구었던 청년은, 그렇게 지구를 넘어 화성을 바라보는 거인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은 그가 미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첫 실패 이후에도 두 번, 세 번 연이어 로켓이 공중에서 분해되며 전 재산이 바닥나고 파산 직전까지 몰렸으나, 머스크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네 번째 도전에서 마침내 민간 기업 최초로 액체 연료 로켓을 지구 궤도에 올리는 기적을 연출해 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당연했던 로켓을 다시 땅과 바다 위로 수직 착륙시켜 재사용하는, 인류 역사상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위대한 기술 혁신까지 증명해 보였다. 항공우주 산업의 대기업들이 수조 원을 들여야 했던 발사 비용을 단 10분의 1 수준으로 후려치며, 스페이스X는 전 세계 우주 화물의 절반 이상을 실어나르는 독보적인 거인으로 우뚝 섰다.
과거 모스크바의 차디찬 식당 뒷방에서 "돈이 없냐"라며 그를 비웃고 모욕했던 러시아의 무기 거상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거나 국가의 몰락과 함께 도태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풋내기 꼬마'라고 조롱했던 일론 머스크는 전 세계 우주 패권을 쥐고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들 유일한 개척자가 되었다. 타인의 냉소와 모욕을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로켓의 연료로 바꿔버린 것, 그것이 바로 일론 머스크라는 인물이 가진 진짜 위대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