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왕 밴더빌트 — 16살 뱃사공은 어떻게 미국 최고 부자가 됐나

1810년의 뉴욕 항구는 매서운 바닷바람과 비린내가 뒤섞인 거친 삶의 현장이었다. 그곳에 매일 아침 열여섯 살짜리 소년이 낡은 나무 배를 몰고 나타났다. 소년의 이름은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가난한 네덜란드계 이민자의 후손으로, 글자도 겨우 깨우친 채 열한 살에 학교를 그만둔 상태였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항구의 뱃사공 중 하나였지만, 소년의 눈빛만큼은 비정상적으로 차갑고 집요했다.
어머니에게 겨우 빌린 100달러로 산 조그만 돛배 한 척이 그의 전 재산이었다. 소년은 승객과 화물을 실어 나르며 다른 선장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악착같이 일했다. 주변 선장들이 녀석의 유별난 독기와 집념을 비꼬며 '제독(Commodore)'이라 부르기 시작한 비아냥 섞인 별명은, 훗날 미국 전역을 지배할 거대한 제국의 이름이 된다.
밴더빌트가 비즈니스를 배운 방식은 교과서가 아닌 영토 전쟁이었다. 그는 뉴욕 주 정부로부터 독점권을 부여받은 거대 특허권자 세력과 맞서 싸우던 토마스 기븐스의 밑으로 들어가 비즈니스 매니저 역할을 맡았다. 밴더빌트는 가격을 사정없이 후려쳐 경쟁자들을 고사시켰고, 법정 소송도 불사했다. 당시 이 독점권 다툼은 미국 대법원 역사상 가장 유명한 판결 중 하나인 '기븐스 대 오그던' 사건으로 이어졌다. 밴더빌트가 직접 당대 최고의 변호사인 대니얼 웹스터를 고용해 이끌어낸 대법원의 승소 판결은, 주 정부가 주간 무역에 개입할 수 없음을 선언하며 미국식 자유 시장 경쟁의 문을 열어젖혔다.
이 지독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밴더빌트는 더 거침없이 영토를 넓혀갔다. 롱아일랜드 사운드와 허드슨강의 해운업을 장악하기 위해 경쟁사의 주가를 폭락시키고, 사정없이 운임을 인하해 상대를 고사시킨 뒤 헐값에 사들이는 수법을 반복했다.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러시가 터졌을 때도 남들이 서부의 진흙탕에서 금을 캘 때, 그는 바닷길을 주목했다. 경쟁자들의 배가 머나먼 파나마를 거칠 때, 그는 더 가깝고 빠른 니카라과 횡단 경로를 개척해 뉴욕과 샌프란시스코를 잇는 해운 독점 체제를 구축했다.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든 동업자들이 그가 유럽 여행을 떠난 사이 회사를 빼앗고 대금을 가로채는 배신을 저질렀을 때도, 밴더빌트는 울화통을 터뜨리는 대신 차갑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너희들을 법정에서 소송으로 파멸시키지는 않겠다. 법은 너무 느리니까. 대신 너희들을 완전히 짓밟아 무너뜨리겠다."
그는 즉시 경쟁 노선을 신설해 요금을 거의 공짜 수준으로 내렸고, 배신자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파산했다. 적들에게 밴더빌트는 냉혹한 약탈자였고, 동업자들에게조차 잔인한 지배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밴더빌트의 진짜 위대함은 자신의 영광이 정점에 달했을 때, 미련 없이 과거를 버릴 줄 아는 가혹한 결단력에 있었다.
1860년대에 접어들며 남북전쟁이 끝나갈 무렵, 칠십 고개를 바라보던 노인은 평생을 바쳐 이룩한 해운업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직감했다. 미래는 바다가 아닌 대륙의 철로 위에 있었다. 밴더빌트는 자신이 소유한 수십 척의 증기선을 모두 팔아치웠다. 주변에서는 늙은 선장이 노망이 나 전 재산을 내팽개치려 한다고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밴더빌트는 침묵 속에 철도 주식을 쓸어 담기 시작했다. 그가 처음 노린 사냥감은 맨해튼 중심부로 유일하게 진입할 수 있는 노선을 가진 뉴욕 앤 할렘 철도였다. 그는 주식 시장의 허점을 노린 사기꾼들과 투기꾼들의 공격을 역으로 이용해 주식을 매집했고, 순식간에 회사의 목줄을 쥐었다. 이어 허드슨 리버 철도까지 집어삼키며 뉴욕 철도의 절대 강자로 부상했다.
그리고 마침내, 필생의 마지막 사냥감이자 뉴욕 동부와 중부 내륙을 연결하는 거대한 심장, '뉴욕 센트럴 철도'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당시 뉴욕 센트럴의 경영진은 앨버니의 시장 출신이자 정계의 거물인 에라스타스 코닝을 중심으로 뭉쳐진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들은 밴더빌트를 거칠고 무식한 선장 출신의 졸부라 부르며 뉴욕 센트럴로 진입하는 연결 노선을 열어주지 않고 무시로 일관했다.
밴더빌트는 구걸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가진 가장 날카로운 무기, 즉 '독점적 지형'을 활용한 냉혹한 올가미를 씌웠다.
1867년 겨울, 기록적인 폭설이 뉴욕을 뒤덮었다. 밴더빌트는 부사장으로 앉힌 맏아들 빌리에게 조용히 명령했다. 뉴욕 센트럴의 열차가 뉴욕 맨해튼으로 들어오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유일한 통로인 허드슨강 다리를 완전히 봉쇄하라는 지시였다.
"다리를 잠가라."
밴더빌트의 허드슨 리버 철도가 연결을 끊어버리자, 뉴욕 센트럴의 모든 화물과 승객은 혹한 속 강 건너편에 고립되었다. 맨해튼으로 가는 길이 막힌 뉴욕 센트럴은 순식간에 마비되었고, 분노한 주주들과 승객들의 비명이 빗발쳤다. 공포에 질린 시장은 뉴욕 센트럴의 주식을 사정없이 던지기 시작했다. 주가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폭락했다.
폭설이 내리는 창밖을 보며 밴더빌트는 비서에게 주식을 매수하라는 차가운 수신호를 보냈다. 헐값에 쏟아지는 뉴욕 센트럴의 지분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킨 그는, 결국 주주총회장에 나타나 자신이 이 철도의 새로운 주인임을 선포했다. 모욕을 주던 귀족 같은 경영진을 몰아내고 뉴욕 센트럴과 자신의 철도를 통합해 미국 역사상 최초의 거대 기업인 '뉴욕 센트럴 앤 허드슨 리버 철도'를 출범시킨 순간이었다.
철도 제국의 지배자가 된 밴더빌트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시카고와 보스턴, 몬트리올까지 철로를 뻗치며 미국의 지리적 한계를 허물어뜨렸다. 맨해튼 42번가에는 자신의 거대한 제국을 기념할 웅장한 '그랜드 센트럴 디포'를 건설했다.
그러나 화려한 제국의 이면에는 지독한 외로움과 비극이 도사리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하며 13명의 아이를 낳아준 아내 소피아가 세상을 떠났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후계자로 점찍었던 막내아들 조지는 남북전쟁 중 병으로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늘 나약하다며 멸시하고 정신병원에까지 보냈던 장남 빌리만이 그의 곁에 남아 제국의 궂은일을 도맡아야 했다.
1877년 1월 4일, 여든둘의 노인은 워싱턴 플레이스의 수수한 침실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침대 맡에는 그가 남긴 1억 500만 달러라는, 당시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거대한 자산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죽음조차 그에게 평온을 허락하지 않았다. 밴더빌트는 제국의 분열을 막기 위해 전 재산의 95%를 장남 빌리와 그의 아들들에게만 몰아주는 가혹한 유언장을 남겼다. 소외된 딸들과 다른 아들은 분노했고, 죽은 아내의 영혼을 불러내 유언장을 조작했다는 영매와 심령술사들의 해괴한 증언이 법정을 뒤덮는 추잡한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평생을 지배자로 군림했던 사내의 마지막은 결국 돈을 둘러싼 골육상쟁의 비극으로 얼룩졌던 것이다.
그가 세운 거대한 철도 제국은 백 년의 세월을 버티지 못하고 자동차와 비행기의 등장 속에 서서히 녹슬어갔으며, 1970년대에 이르러 파산의 종말을 맞이했다. 그의 후손들 역시 호화로운 대저택을 짓고 사치스러운 삶을 영위하다가 결국엔 제국의 유산을 지켜내지 못하고 흩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뉴욕 한복판에 우뚝 선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을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한때 100달러를 쥐고 항구의 비린내 속에서 맨손으로 거대한 대륙의 철길을 깔았던 한 노인의 지독하고 냉혹했던 발자취를 여전히 느끼고 있다.